[D파이오니어를 만나다] “블록체인은 디지털 등기소… 태동기 시장서 글로벌 대표 될 것”

D파이오니어를 만나다

19. 김원범 블로코 대표

“우리의 정체성은 블록체인을 혁신의 도구로 쓰는 엔터프라이즈 기업입니다. 비싸고 문제가 많은 엔터프라이즈 SW(소프트웨어)에 블록체인의 강점을 입혀 산업현장에서 가치를 만들어내고,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SW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습니다.”

김원범 블로코 대표는 인터뷰 내내 블록체인을 부동산등기소와 바퀴에 비유했다. 등기소의 개념을 디지털 세상으로 옮겨 누구나 참여하는 민주적이고 신뢰성 높은 거래·계약 생태계를 만들고, 수천년 전 발명된 바퀴도 새로운 운송수단이 등장할 때마다 달라지듯이 블록체인이 디지털 기술의 불편과 한계를 보완해 사회와 산업 전체로 가치를 확산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운영체제나 데이터베이스, 인공지능은 승자가 뚜렷하지만 블록체인은 아직 무주공산”이라면서 “블록체인 적용 경험과 솔루션 수준이 세계적인 만큼, 아직 태동기인 이 시장에서 세계 대표 기업이 되겠다”고 밝혔다.

 

대담=안경애 ICT과학부 부장

◇”기업 시장 특화한 블록체인 기업 될 것”=티맥스소프트, 티맥스데이터, 티맥스코어(현 에스코어)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김원범 대표는 비트코인 시스템을 창시한 나카모토 사토시가 가상화폐에 대해 쓴 화이트 페이퍼를 읽고 매료돼 블록체인에 빠져들었다. 블록체인으로 창업해야 겠다는 결심을 굳힌 그는 2013년말부터 창업 준비를 시작해 회사에 사표를 냈다. 그리고 친구 2명을 설득해 2014년 12월 블로코를 창업했다.

김 대표는 “2014~2015년은 스타트업 창업이 활발하고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비즈니스모델 붐이 일어나던 시기”라면서 “클라우드 기반 블록체인 플랫폼으로 특화해 창업에 도전했지만 블록체인과 클라우드 모두 낯선 개념이다 보니 기반을 다지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고심 끝에 클라우드 기반 블록체인 서비스 모델은 나중에 추구하고 기업용 SW(소프트웨어) 시장에서 기회를 찾는 것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국내 주요 기업들과 블록체인을 적용한 엔터프라이즈 시스템 실증과 테스트를 끈기 있게 진행하며 세계적인 레퍼런스를 보유했다. 최근에는 BaaS(블록체인 서비스), 클라우드, DID(분산신원인증) 등이 친숙한 개념이 됐고 본격적으로 확산되면서 회사는 본격적인 성장 기회를 맞았다.

◇블록체인, 사행성 논란 딛고 메인 기술로=블록체인은 초기 가상화폐가 부각되면서 사행성 논란을 빚었지만, 결제·계약·데이터 공유·공급망 관리 등에서 효용성이 검증되면서 최근 국내외 기업들이 테스트 단계를 거쳐 업무현장에 본격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1세대 블록체인 기업이면서 국내에서 가장 많은 고객과 사업경험을 보유한 만큼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게 블로코의 전략이다.

김 대표는 “창업 초기만 해도 시장에서 블록체인에 대해 크게 세가지 질문을 던졌다. 첫째는 블록체인이 뭐냐는 것이고, 두번째는 이걸로 뭘 할 수 있느냐. 세번째는 블록체인이 그 문제를 진짜 해결할 수 있느냐였다”고 말했다.

블록체인이 어디에 쓰이고, 어떤 가치를 만들어 내느냐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있었던 것이다. 또 현실세계에서 사용자들이 매일 쓰는 시스템에 적용됐을 때 안정적으로 동작하느냐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 그 질문들에 모두 대답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회사는 기술에 대해 흥미가 있고 우호적인 이들이라고 해도 잘 이해한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에 끈기 있게 설명하고 실제 구축해서 실증 테스트를 통해 보여주는 것밖에 답이 없다고 판단했다. 기술이 적용된 서비스가 쓰이는 것을 보여주면서 신뢰를 쌓는 데 공을 들였다. 김 대표는 “블록체인만 적용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게 아니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서비스가 함께 개발돼야 하는 만큼 처음부터 파트너들과 함께 협업체계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KSM에 블록체인 적용=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강했지만 지난 수년간 블록체인은 대규모 엔터프라이즈 시스템에 적용돼 안정성과 성능을 검증받았다. 대표적으로 블로코는 한국거래소의 KSM(한국거래소 스타트업 마켓)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구축해 2016년 11월 오픈했다. 스타트업의 비상장 주식을 거래하는 시스템으로, 거래소는 미 나스닥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해서 혁신기술 도입을 결정했다. KSM에는 작년말 기준으로 115개 기업이 등록돼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KSM보다 더 큰 적용사례는 롯데카드다. 2016년말부터 앱카드 생체인증과 결제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4년 가까이 대규모 서비스의 안정적인 작동을 뒷받침했다. 회사는 이후 롯데정보통신과 협력하면서 블록체인 기술을 공급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롯데멤버십을 포함한 여러 분야에 블록체인을 확산할 준비를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밖에도 많은 기업들이 블록체인을 활용한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현대자동차그룹은 다양한 계열사와 공급사가 연결된 공급망을 갖추고 있어서 보안 확보가 중요한데, 정보보안 준수 여부를 관리하기 위한 블록체인 기반 서약서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말했다.

◇”이제 실증 지나서 상용화로 가야”=김 대표는 블록체인 실증은 이제 충분히 이뤄진 만큼 상용화로 가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상용화를 위해선 성능과 안정성을 한 단계 높이는 게 필요하다.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거래에 블록체인이라는 바퀴를 달아서 성공적인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자전거 바퀴를 떼어내 자동차에 쓸 수 없듯이, 엔터프라이즈 환경에 맞는 블록체인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

김 대표는 “우리는 엔터프라이즈 환경에 필요한 속도와 성능을 완성했다”면서 “초당 1만회의 트랜잭션을 구현하고, 롯데카드 앱카드 시스템을 4년간 장애 없이 운영하는 등 기업의 미션 크리티컬한 시스템에 도입돼도 부족함 없는 기술 수준을 갖췄다”고 강조했다.

블록체인은 완전히 새로운 발명이 아니다. 오래된 기술을 조합해서 문제를 푸는 해법을 주는 기술이라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블록체인을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 “블록체인을 재발명하지 않기 위해”라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 거래 시 확정일자를 받는 것은 그게 가장 접근성이 좋고 경제적이면서 애초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면서 “블록체인은 누구나 쓰는 대규모 등기소를 소프트웨어적으로 만들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기술”이라고 밝혔다.

블록체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뢰를 만들고 계약을 포함한 중요한 데이터를 모아서 가치를 만들기 위해 개발된 기술로, 위변조 방지, 보안 등에서 확실한 강점이 있으면서 필요한 영역에 즉각 적용 가능한 적정기술이라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구글은 블록체인이란 키워드가 나오기 전 이미 비슷한 개념의 시스템을 구축해 쓰고 있었고, 페이팔도 유사한 기술을 사용해 왔다”면서 “수천년 간 쓰여온 바퀴 같은 기술이 바로 블록체인”이라고 말했다.

블록체인은 인터넷과 비슷한 근간기술로, ‘신뢰의 인터넷’으로 불리기도 한다. 블록체인을 활용해 등기소 같은 시스템을 인터넷에서 누구나 접근 가능하도록 만들면 많은 일이 가능해진다.

김 대표는 “1970~80년대에는 사람 간의 빠른 통신이 특권이었고, 정부나 군대 등이 전용망을 통해 이용하던 것에서 인터넷의 보급으로 대중화됐듯이 블록체인은 신뢰의 대중화를 통해 인터넷과 비슷한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문서 관리에 블록체인 적용=회사는 전자문서를 만들고 저장하는 데 블록체인을 적용하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기업들은 전자문서 관리를 위해 공인전자문서보관소, TSA(시점확인서비스) 등 외부 기업이나 제3의 기관이 문서의 완결성을 보장하는 서비스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일반적인 법적 계약서의 경우 등기소를 이용하듯이 등기소의 전자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김 대표는 “공인전자문서보관소는 문서 보관을 위한 인력, CCTV, 출입관리, 벽 두께까지 유형의 자원에 대한 규정이 있는데 블록체인은 유형의 자원이 아닌 알고리즘과 무형의 접근 방식으로 안전하게 만든다”면서 “기업 입장에는 SW만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최근 기업들이 전자문서를 포함한 중요한 데이터의 보안성과 신뢰성을 높이고 상호 감시하도록 돕는 DTT얼라이언스라는 협의체를 발족했다. 기업들이 자사 서비스나 애플리케이션에서 만들어지는 중요 문서나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관하려는 수요가 많은데 이를 지원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게 목적이다.

김 대표는 “블록체인이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머클 트리(Merkle tree)’라는 개념을 통해, 자신이 가진 데이터를 상대에게 완전히 오픈하지 않아도 ‘데이터의 DNA’라고 할 수 있는 해시값을 공유함으로써 데이터를 변조하거나 바꾸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라면서 “관련 산업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DTT 얼라이언스를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도 확산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블록체인 산업환경 개선 분위기=신기술의 보급 초기는 ‘규제와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최근 국내 블록체인을 둘러싼 규제 여건이 급변하면서 기회가 예상된다. 전자서명법에서 공인인증서를 폐지하고, 전자문서법에서는 전자문서의 법적 효력을 포괄적으로 인정하는 한편 특금법 개정으로 가상자산 시장도 변화를 앞두고 있다. 정부가 데이터댐을 포함한 디지털 뉴딜 사업을 추진하면서 산업 전반의 분위기도 좋아지고 있다.

김 대표는 “기존에는 공인인증서만 효력이 있었는데 이제 블록체인을 포함한 전자서명도 인감 효과를 가지게 되니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다양한 계약 방식이 가능해진다. 기존에는 공인인증서라는 어려운 수단을 써야 해서 디지털화하기 어려웠던 곳에서 전자화가 가능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은 공전소와 TSA에 한해서만 전자문서의 효력이 인정됐는데, 언택트 시대에 다양한 형태의 계약문서와 법적 효력을 가지는 문서가 만들어지면서 블록체인의 의미가 커지게 된다. 특금법도 의미가 있는데, 그동안은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자산 발행이나 운영, 거래가 법망 밖의 그레이존에서 이뤄지던 것에서, 제도권의 금융사나 기업들도 접근할 수 있게 된다.

김 대표는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공생관계인데, 가상자산 거래가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면 그동안 암암리에 이뤄지던 것들이 밝은 세상에서 이뤄질 것”이라면서 “우리도 법 시행에 맞춰 가상자산을 수탁 운용하는 커스터디 서비스와 관련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클라우드와 블록체인 융합에 전력=회사는 최근 클라우드와 블록체인의 융합에 집중하고 있다.

김 대표는 “블록체인에 특화된 BaaS(블록체인 서비스)를 넘어서서, 보다 범용적인 클라우드 기술과 융합한 PaaS(플랫폼 서비스)를 통해 엔터프라이즈 애플리케이션 운영을 지원하는 BPaaS를 연내에 내놓을 계획”이라면서 “이 서비스가 나오면 블록체인 보급과 실증이 더 쉬워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롯데카드의 경우 클라우드 기반으로 블록체인을 도입했는데, 같은 클라우드라고 해도 그 위에서 블록체인 소프트웨어를 가동하면 보안적 완결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블록체인이 클라우드의 보안이슈 등 완성도를 높여주는 보완재 역할을 하다는 것. 이런 강점을 활용해 전통적인 엔터프라이즈 IT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전략이다.

김 대표는 “엔터프라이즈 SW는 여전히 비싸고 이용자 입장에서 개선의 여지가 많은데, 블록체인으로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 많은 기업들이 산업현장에서 블록체인이 주는 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그동안 하드웨어와 제조산업에서는 글로벌 선도국인데, SW는 자랑할 게 많지 않은 게 현실”이라면서 “아직 확실한 강자가 없는 블록체인 산업에서 세계 대표기업으로 성장해서 국내 SW 산업에서 족적을 남기고 싶다”고 강조했다.

 

사진=이슬기기자 9904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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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코 “블록체인 + 클라우드로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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